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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와 아가씨 그리고 클래식

by PLEINELUNE 2020. 3. 16.

오랜만에 '캐논 변주곡'을 틀어놓고 커피메이커에 원두를 채워 넣었다.
커피메이커의 물이 금새 끓어올라, 원두향이 집안 구석구석 퍼져간다.
그렇게 커피향을 맡으며 캐논을 듣고 있자니 문득 몇 해전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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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정도 전의 일이다. 심적으로 힘들던 때라서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집에 귀가했었다.
때문에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으며 그만큼 택시를 타는 일 또한 잦았던 때였다.
그래서 여느때처럼 기분좋게 마시고, 택시를 잡아탔는데 특이하게도 택시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당히 취했던터라 스르륵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쐬며 바깥구경을 하다가,
곡이 바뀌어도 클래식이 나오는 것이 이상해서 슬쩍 카오디오를 봤더니,
라디오 주파수가 FM 93.1MHz로 맞추어져 있었다.
93.1MHz는 국내 유일 클래식 전문 채널로,
어머니께서도 클래식을 좋아하셔서 항상 라디오 주파수를 93.1MHz로 맞춰달라고 하시곤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분명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DJ의 음악방송보다,
아무리 차분한 DJ의 방송보다도 밑도 끝도 없는 차분함을 안겨주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사실 클래식을 듣던 택시 기사분은 처음 봤던 것 같아서
기사분께 "클래식 좋아하세요? 클래식 듣는 택시 기사분은 처음이라서요." 라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기사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방금 손님 타기전에 내린 아가씨가 틀어놓은건데.. 그냥 듣다보니까 좋아서 듣고 있는거에요" 라며 허허 웃어보이신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그 아가씨가 타자마자 하는 말이, 너무 화나는 일이 있어서
클래식을 들어야겠다고 하더니만 채널 좀 맞춘다며 알아서 채널을 맞춰놓은거에요"
듣다보니 기사분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냥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가씨가 궁금함과 동시에 매력적이라고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 아가씨는 지금도 뭔가 화가 날 때면 클래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킬까?
한 번도 만나보지도, 이야기 나누어 본 적도 없는 아가씨에 대해 나는 상상한다.
딱히 예쁘지는 않을지 몰라도, 세련되고 매력있는 아가씨일 것이리라고.
이렇게 클래식을 들고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자니,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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