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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압도적인 석양, 그리고 하쓰미

by PLEINELUNE 2021. 1. 25.

 

 

 "아까 하쓰미 씨와 당구를 치다 문득 생각했는데." 
 "내게도 하쓰미 씨 같은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스마트하고 우아하고, 미드나이트 블루 원피스에 금 귀고리가 잘 어울리고, 당구도 잘 치는 누나 말이죠."
 하쓰미 씨는 기쁜 듯이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요 일 년 동안, 내가 남에게서 들은 말 중에 지금 와타나베가 한 말이 최고로 기쁜데. 정말이야."

 

 

 

 

 

 

 

기적처럼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 손과 접시, 테이블과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듯한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그런 압도적인 석양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 씨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일으켰던 내 마음속의 소용돌이가 무엇이었던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채워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소년기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타오르는 듯한 순진무구한 동경을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 잊어버리고 왔기에,

그런 것이 한때 내 안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 살아온 것이다.

하쓰미 씨가 흔들어놓은 것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나 자신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의 울어버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이지 특별한 여자였다. 누군가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구원했어야만 했다.

 


하쓰미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 이르자,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2년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그 2년 후에 면도날로 손목을 그었다.

 

 

 

석양을 바라볼 때면 이따금 소설 속 저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갈증을 느낀다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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